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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book)

[책 읽기] 아무튼, 산

by 댄싱펜 202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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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아무튼 시리즈 29) / 장보영 / 코난북스

밀리의 서재 / e북

 

 

 

이 책 한 권으로 아무튼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아무튼 시리즈를 많이 읽진 않았다.

내가 읽은 것, 어깨너머로 본 것, 건네 들은 것들을 헤아려보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감히 자신과 동일시할만한 것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쏟아낸다. 누가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진심을 다해, 사력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옆에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마주 보며 나눈 길고 진솔한 이야기.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산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산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나 그림은 없다. 당연히 오르는 정보라던가 인기 구간 같은 이야긴 더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며 느끼는, 오르기 전과 후로 느끼는 저자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산이 그려진다. 그때의 나무와 하늘과 흙길, 그리고 오르내리며 만난 사람들까지도 함께였던 것처럼 선명하다.

정말 산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며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대화 상대를 만난듯하다.

저자의 산을 오르내리던 젊은 날은 오르내리던 감정과 다양한 사건들과도 얽혀있다. 그렇게 산을 하나둘씩 오르고 내리며 저자는 조금씩 성장한다. 첫 산을 오를 때의 당당함과 어찌 보면 무모함은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모습이 보이고, 후반기의 산을 대하는 태도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산을 겪으며 틀림이 아니라 다름에 대해서 배워가고, 정작 중요한 것은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자신임을 알아가기도 한다.

 

 

 

중반까진 읽기가 힘들었다.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어찌보면 잘못된 책 읽기 습관이랄까..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걸 왜 읽고 있지, 이 책을 읽어서 내가 얻는 건 뭐지..?’ 자꾸 책에서 뭔가 찾으려고만 했다. 그동안 신나게 읽어온 책들을 돌아보니 그런 류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시간을 들여서 무엇인가를 보았다면 그만큼의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얻는 것의 종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간 생각했던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지식이었다면, 좀 더 그 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소박한 경험이라던가, 피식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두니 책 읽기는 쉬워졌고 재미있어졌다.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내일 사랑하는 가족과 동네 뒷산에 올라봐야겠다.'

 

 

 

 

 

 

기록

 

  •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소비할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 헤맸던 시간,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광고해야 했던 시간...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피로했고 외로웠다.

 

  • 스물일곱, 서른은 아직 아니었지만 청춘의 달뜬 호기로부터는 한 걸음 멀어진 시간에 나는 또 다짐했다. 행복하자고. 어제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의 마음을 알았으니, 더는 모른 척하지 말자고. 하루라도 일찍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 함께 걸어가는 사람 대부분이 나처럼 제 몫의 짐을 짊어지고 제 몫의 길을 홀로 걷는 여행자들이었다. “Have a good trail!” 따로 또 같이, 서로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서 적당한 속도로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 내 의지를 따라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감, 어쩌면 산을 핑계로 일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자괴감, 이 두 가지 극을 달리는 감정을 오고 가며 괴로울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건 자기 사신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 ‘그거면 됐어’라는 말은 최고가 되라고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더없는 위로가 됐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안나푸르나는 날마다 ‘가슴 뛰는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 세 계절 동안 등산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산에 대한 대단한 지식보다는 산을 향한 열정과 순수를 배웠다. 어른이 되고 나서 무언가에 이렇게 깊이 빠져본 적이 없었다. 두 발로 걸어 올라갈 수 없는 산 앞에서 우리는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고 또 뜨거웠다.

 

 

 

 

 

 

 

  •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말한 앨버트 머메리.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머메리즘이란 등정주의를 가리키는 알피니즘이 아니라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오르는 것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뜻한다. 그는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했다. 고도가 아니라 태도.

 

  • 산에 옳고 그름이 있을까. 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각각의 방법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정말 산을 좋아한다면 내가 모르는 산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산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 어떤 방법을 택하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登頂主義)가 아닌 매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등반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 어느새 산악인들은 탐험이나 모험 너머의 가치와 윤리를 향했다. 최소한의 등정인원, 장비, 식량으로 새롭게, 다르게, 가볍게 그리고 자연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나의 세계는 산속에서 넓어지고 있었고 다른 의미에서 좁아지고 있었다.

 

  • ‘어디 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구나.’ 늦은 퇴근길, 지하철 창문의 어둠에 비친 내 얼굴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일과 일상의 분리 그리고 균형을 기대하며 변화를 모색했지만 나는 또 한 번 실패했다.

 

  •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부의 욕망이 아닌 내면의 본성을 따르며, 내 안의 순수를 지키며, 본연의 나를 인정하며, 그렇게 소박하게 위대하게 살아가는 것. 지금껏 그래왔듯 산과 함께. 내 안의 산에서, 내 바깥의 산에서 무한한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갈망하며, 산을 넘고 나를 넘어 더 크고 넓고 깊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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